내달 초 국내 STO 가이드라인 마련에 대한 힌트-일본은 STO를 어떻게 규제하고 있을까

STO는 뭐고 가이드라인은 뭐야?
오랜만에 글을 쓴다. 연말을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자마자 일들이 좀 바빠서 오랫동안 리서치 활동에 뜸했었다. 이제 다시 달려볼까 한다.
최근 블록체인 업계뿐 아니라 금융권에서 가장 핫한 주제 중 하나는 단연코 STO이다. STO는 Securitized Token Offering으로, 쉽게 말해서 기존 금융시장에 존재했던 증권들을 블록체인 상의 토큰으로 만들어서 유통시킨다는 아이디어이다. 증권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기술적 방식에 블록체인이 포함되는 것이지 법적 기능과 의미에 있어서 크게 차이는 없다. ICO 붐이 일어났던 2017년부터 STO는 이미 핫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STO에 대한 규제가 현재까지도 마련되지 않았으며, 규제의 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금융사와 기업들이 STO 사업을 확장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들시들해진 STO에 대한 관심은 최근 다시 고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최근 STO를 향한 관심의 가장 큰 이유는, 규제가 서서히 마련되어가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속에서 기존 대기업과 금융사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증권사들은 포화된 경쟁 속에서 차별점을 챙기기 위해 소리소문 없이 STO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나 역시 증권사에서 일하면서 STO가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매일 실감하고 있다. (조만간 STO에 대한 질문들을 쭉 받아 대답해주는 QnA 글을 작성해볼 생각이다.)
현재까지 STO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이건 되고 이건 안 된다 라는 것을 말해주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그래서 대기업들과 금융사들은 소극적인 범위 안에서 준비만 할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런칭은 할 수 없었다. 그나마 금융규제 샌드박스(일명 혁신금융서비스)에 따로 신청하여 선정된 기업들만이 정해진 틀 내에서 STO를 다룰 수 있었다. 이에 STO 사업을 진행하려는 기업과 금융사들의 가장 큰 니즈는, '제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였다. 실제 현업자가 아닌 사람들은 왜 그렇게 가이드라인무새들이 많은 것인지 공감이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야말로 불법도 아닌 '무법'이기에, 기껏 다 준비해서 진행했다가 나중에 가서 갑자기 하지 말라고 막힐 수도 있기에 섣불리 시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예 안 하자니 다른 경쟁사들은 다 준비하고 있어 준비는 또 해야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금융위는 지난 19일에 2월 초에 STO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위는 19일에 열린 제6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STO를 전면 허용하고 다음 달 초까지 증권형 토큰의 발행·유통 규율체계를 발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었기에 크게 새로운 것은 없지만, 특정 조건만 만족한다면 기업들이 증권사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STO를 통해 자사 관련 증권을 발행해 유통할 수 있다는 조항이 중요하다. 이는 종국에는 증권사의 기능 자체를 대체할 수도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에 중개자들이 아예 없어지고 기업들이 직접 STO를 발행 및 유통시킬 수도 있겠지만, 비용과 시간이 꽤 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결국 STO의 발행/유통도 소수의 중개자 및 플랫폼에 의존하는 산업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어느 곳이던 그 중개자 및 플랫폼으로써 독보적인 위치를 잡는 이에게는 향후 몇년간 큰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기업과 금융사들의 내달 초 발표될 STO 가이드라인에 숨을 죽이며 집중하고 있으며, 바삐 머리를 굴리며 대응책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간에, 내달 초 STO 가이드라인은 마련되고 본격적으로 STO 사업은 달려갈 것이다. 국내 STO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STO에 대한 규제가 일찌감치 잘 마련되어 활발하게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사례를 공부하며, 가이드라인 마련 이후 STO 산업은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떻게 플레이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힌트를 얻어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STO 시장이 그 사례로써 최고이다.
일본의 STO 시장
사실 안 그래도 조만간 아예 각을 잡고 일본의 웹3 열풍에 대해 시리즈를 쓸 것인데, 작년 연말부터 내가 업계 지인들을 만나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일본이 다음 기회의 땅이다'이다. 일본은 블록체인을 가장 빨리 채택한 국가들 중 하나였지만, 마운틴 곡스 거래소 대형 해킹 사건 이후로 가장 빠르게 빡쎄게 규제를 때려버린다. 이로 인해 2021년과 2022년 토큰의 가격 상승에 모두가 가즈아를 외쳤던 무지성 불장 속에서 일본은 크게 업사이드가 없고 별 볼일 없는, 블록체인 세계에서 비교적 '아웃사이더'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토큰 가격 상승에만 의존하는 지속성 없는 비즈니스 모델이 모두 죽고 모두가 새로운 생존전략을 찾고 있는 지금과 같은 하락장 속에서 일본은 그 진가를 서서히 발휘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블록체인 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규제의 틀이 정갈하게 마련된' 매우 좋은 시장이다.

어찌됐든 일본은 STO에 대한 규제를 이미 몇년전에 마련했고, 이미 STO가 실제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연구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STO를 어떻게 규제하고 있고, 산업에서는 어떻게 플레이하고 있는지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자.
일본 STO 관련 규제의 전체적인 그림
일본은 2016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기존법을 개정하여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 안에 편입시켰다. 블록체인에 대해 아예 새로운 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법을 추가/수정해 블록체인에 대한 사항들을 정했다고 보면 된다. 일본은 디지털 자산을 크게 1) 스테이블 코인 2) 암호화폐(일반적인 유틸리티 토큰) 3) STO로 분류하였고, 각 분류에 적용되는 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스테이블 코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본격적으로 쓸 일본의 웹3 열풍에 대한 시리즈에서 자세히 알아보고 이 글에서는 STO만 다루도록 하겠다)

특히 일본은 2020년 5월부터 금융상품거래법(Financial Instruments and Exchange Act) 개정안을 시행하였고, 해당 개정안 하에서 STO는 주식과 동일한 적용을 받게 되었다. 더 구체적으로, 1) 증권보유자(=투자자)가 특정 사업에 현금 및 기타 자산을 기여하거나 투자함, 2) 증권보유자가 기여한 현금 및 기타 자산이 특정 사업 내에서 투자에 활용됨, 3) 증권보유자는 이익에 대한 배당 및 기타 자산을 특정 사업으로부터 수취함, 이 3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토큰은 STO로 분류된다. 해당 STO는 ERTR(Electronically Recorded Transferable Rights)로 분류되어 그 발행과 유통에 있어 기존 증권과 거의 동일한 규제를 적용 받는다.
일본의 STO 자율 규제
여기까지 봐서는 일본의 STO 규제 방향은 우리나라가 곧 발표할 가이드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일본 STO 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자율규제'에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19년 10월에 STO 산업을 키우고자 하는 뜻을 모은 일본 증권사 6군데(모넥스, SBI, 카부닷컴, 다이와, 노무라, 라쿠텐 증권)가 모여 사단법인 형태로 일본 STO 협외(Japan STO Association, 이하 JSTOA)를 설립했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2020년 5월에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STO가 제도권 안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는 시기와 동시에 JSTOA는 일본 금융청으로부터 자율규제기관으로 정식 허가를 받게 된다. 일본에서는 탑다운(Top-down) 방향으로 정부 당국이 STO 관련 규제를 정해서 업계에 하달하지 않는다. JSTOA의 주도 하에 업계에서 STO 사업을 실제로 진행하는 종사자들이 빠르게 실증실험을 진행하면서 STO 표준과 가이드라인을 만든 후 정부 당국과 소통하는 바텀업(Bottom-up)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재 JSTOA에는 2023년 1월 기준으로 14개 기업이 주요 멤버, 60개 기업이 찬조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 STO 사업에 개입하는 기업들 거의 대부분이 JSTOA에 참여해 함께 STO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STO 사업을 실제로 진행해본 경험과 접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규제 기관이 규제를 마련할 때까지 기업들이 기다려야할 필요가 없다. 실제 종사자들이 협회라는 형태를 통해 직접 사업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연구/실험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후 정부 당국과 소통을 통해 조정해가는 형태이기에 일본에서는 STO 관련 가이드라인이 빠르게 마련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실제로 STO가 매우 다양하고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일본의 다양한 STO 활용 사례들
1) 미즈호 은행은 2020년 2월 야마다 전기와 패밀리마트 등 일반 기업의 회사채를 STO로 발행하여 유통시킴. 이후 발생기업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인투자자에게 회사채 STO를 판매하는 실증실험을 진행함.
2) SBI 그룹은 2020년 10월에 당시 신설된 자회사 SBI e-Sports의 보통주를 STO 형태로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함. 이때 노무라 그룹이 설립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부스트리의 플랫폼 ibet에서 STO를 발행함.

3) 미쓰이스미토모 신탁은행은 2021년 3월 미국의 STO 플랫폼 스타트업 Securitize와 함께 신용카드 채권을 STO 형태로 유동화시킴.

4) SBI 그룹과 미쓰이스미토모 그룹이 2021년 3월 공동출자하여 대체거래소인 오사카 디지털 거래소를 설립함. 오사카 디지털 거래소는 2023년부터 STO를 취급할 계획이라고 함.

5) 2021년 4월에 SBI 증권은 자사 채권을 STO로 발행하여 전문투자자뿐 아니라 개인투자자에게도 유통시킴.

6) 미쓰비시 UFJ 신탁은행은 2021년 7월 부동산 자산 운용사 케네딕스와 함께 중소형 단일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STO를 발행함. 해당 STO 투자자는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임대 수익을 분배 받을 수 있음.

7) 미쓰비시 UFJ 신탁은행이 운영 중이던 STO 발행 플랫폼 Progmat을 자사에서 분리시킨다고 지난 12월 발표함. 이후 JPX, NTX 데이터, 미쓰이스미토모 그룹, 미즈호 은행, 미쓰이 스미토모 신탁은행, SBI PTS 홀딩스 6개 기업이 공동 출자해 신규 법인을 만들 것이라고 발표함. 2023년 9월에 출자 작업이 완료될 예정이며, 위 7개 기업은 Progmat을 활용해 각사의 디지털 자산 사업을 추진할 계획임.

일본의 STO 활용 사례들을 보면 업계의 주도로 자율 규제를 만든다는 점도 눈에 띄지만, 서로 다른 기업들 간의 협업도 주목되는 포인트이다. 그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모두가 이익을 취해가는 윈윈 구조를 추구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지난 12월 발표된 Progmat의 7개 기업 공동 출자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하지만 일본도 아직까지는 활용사례의 대부분이 제한된 형태의 실증실험이며, 미래에 출범할 사업을 막 시작한 초기 단계인 곳들이 많다. 그리고 STO 사업이 기업들과 투자자들에게 실제로 어떤 유의미한 도움을 주었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법'과 같이 일단은 해봐야 그걸 알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한국의 STO 규제 마련이 상대적으로 늦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내달 초 출시되는 가이드라인은 시작점으로써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은 어떻게?
국내에서 STO 사업은 증권사 위주로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JSTOA와 같이 유의미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협의체는 많지 않으며 자율 규제 기능은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다. 지난 16일 금융감독원이 주최한 가상자산 리스크 토론회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자율 규제는 규제가 아니다. 지금 규제의 틀을 어떻게 둘지에 대한 입법적 고민은 국회에서 하고 있으며, 금융당국을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자들은 이에 대한 의견을 내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JSTOA는 일본 금융청으로부터 자율규제 기관으로 정식 허가를 받기 2년 전에 이미 증권사들끼리 모여 만들어진 협의체였고, 자율규제 기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정부가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안을 통해 STO 규제의 틀을 먼저 마련해주고 정식 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협력보다는 경쟁 관계의 비중이 커 각각 조용히 STO 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JSTOA와 같은 협의체가 없고, 아직 STO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도 않은 상태여서 일본과 같은 자율규제를 논의하기에는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2월 초에 STO 가이드라인이 나온다면 많은 것들이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자율규제 방식은 장점도 많지만 분명히 단점들도 존재한다. 무작정 일본의 방식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상황에 맞게 STO 규제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증권성에 대한 법적 틀은 기존 자본시장법에서 증권을 다루는 틀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단, 정부가 STO를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 발행하는 것을 허용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생각한다. 컨소시엄 혹은 프라이빗 블록체인 위에서 일단은 한정된 범위 내 금융상품들을 STO로 발행/유통하는 것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국내에서도 JSTOA와 같은 협의체가 시작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면 이 부분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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