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교환학생 와서 창업했다가 X망하고 신주쿠에서 오열한 썰
조회수를 높이고자 어그로를 끌기 위해 제목을 자극적으로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목의 반은 틀리고 반은 맞습니다. '일본으로 교환학생 와서 창업'과 '신주쿠에서 오열'은 사실이고, 'X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창업을 했고, 첫 프로덕트를 만들고, 가설 검증을 해보고, 프로덕트를 접었죠. 첫 프로덕트 실패의 씁쓸한 맛을 맛본 후 신주쿠에서 뜨거운 위스키와 함께 딱 하루 오열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새로운 프로덕트를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첫 실패를 '졌지만 잘 싸웠다'와 같이 멋있게 포장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중의 내가 두고두고 읽어볼 수 있도록 복기점들을 있는 그대로 매섭게 남기기 위함입니다. 다음 프로덕트를 할 때에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점들 말이죠. 이왕 쓰는거 다른 창업가들에게도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처음 디스콰이엇에 글을 올립니다. 역시 간결성을 위해 짧게 써야하나.. 고민하다가 결국엔 제 자신을 위해 쓴 글이기에 제 스타일대로 길게 썼습니다. 다소 긴 글이지만, 처음 창업을 진행하시거나 시작하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직 보지 못하는 점들에 대해 지적하거나 조언해주시고 싶은 분들의 피드백도 모두 환영입니다.

그 전에, 그래서 너가 누군데? 안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챕터부터 읽으셔도 됩니다.
전진현입니다. 나이는 2000년생, INTP, 인생 좌우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생은 무거운 짐을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초등학교 때 원래 수영선수였던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의 나름 세상 물정 알(?) 나이가 되자 수영에 현타가 왔습니다. 매일 오리발로 후두려맞으며(내가 수영할 당시에는 때리는게 일상이었음) 훈련을 해서 나중에 뭐가 될 것인가? 잘 되면 제 2의 박태환이고, 잘 안되면 수영 강사인가. 절대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끌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름 서울시에 1등을 찍었던 성적이 바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고 결국 중학교에 올라가며 수영을 접었습니다.
이때 어린 나이에 '즐기는 자를 이길 자는 없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걸 하고 살아야겠다'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삶은 좋아하는 거를 찾아 헤맨 여정이었습니다. 중딩 때 사춘기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그 때 좋아하던 유일한 관심사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느와르요. 영화 '신세계'에서 중국어 잘하는 건달 역으로 나온 황정민의 '정청' 역이 너무 멋있어서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뜬금 없이 꽂혀 명덕외국어고에 지원하게 됐고 합격하였습니다.
그렇게 마땅한 진로 없이 맨날 영화를 보며 지내다가, 가장 좋아하던 배우 '크리스찬 베일'의 출연작을 정주행하다 고2 여름방학 직전에 영화 '빅쇼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다큐 형태의 영화인데 처음 보고 든 생각은 '뭔 개소리야 이게?'였습니다. 당시 경제나 금융을 단 하나도 몰랐던 저는 전혀 이해를 못했죠.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금융을 공부해서 이 영화를 꼭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고2 여름방학 때 학교 선행 다 제치고 TESAT(국가공인 경제 이해력 시험) 원서와 각종 금융 서적을 사서 내내 공부했습니다. 영화 빅쇼트를 이해하게 되었고, '다음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창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경제/경영/금융을 제대로 공부해야했죠. 그래서 고3 때 머리도 삭발하고 각성 모드로 공부를 해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아주 쎄게 번아웃이 왔습니다. 입학하자마자 공부, 인간관계, 가족 등등에서 번아웃과 악재가 한번에 겹쳤고 멘탈이 완전히 붕괴됐죠. 그렇게 학교도 거의 안 나가고 대학 친구도 안 사귄 채 열등감 속에 허덕이며 패인 같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1년 반을 그렇게 지내다가 찾은 해결책이 대한민국 최고의 휴양지 '군대'였죠. 남자로써 아무런 현실적인 고민 없이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마지막 휴가라고 생각하고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쉬었습니다. 그렇게 군대에서는 일본 애니에 빠져 무려 60작품을 보며 애니 전문가로 21년 2월에 전역합니다.
군대에서 전역한 직후엔 복학해 그냥저냥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갑자기 비트코인에 투자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블록체인이나 코인이 뭔지도 몰랐고, 다만 '코인 = 사기'라는 생각만 머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안된다고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후 든 생각은 '적어도 우리집이 패가망신인지 아닌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였습니다.
그렇게 비트코인 백서를 무작정 읽기 시작하며 블록체인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존 금융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탄생한 비트코인,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확장된 블록체인 생태계의 이야기가 영화 빅쇼트 이후 처음으로 제게 설렘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비트코인의 이념에 설득되어 블록체인 관련 모든 글과 영상을 정주행하며 공부했고, '21년 여름에 서울대 블록체인 학회 디사이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22년부터 5대 디사이퍼 학회장이 되어 학회 운영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쩌다가 창업을 하게 됐는가? 마찬가지로 안 궁금하시면 다음 챕터부터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디사이퍼에서 생긴 인연을 토대로 자체 블록체인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슈퍼블록에서 사업개발 매니저로 근무했으며, 이후 레거시 금융기업으로써 블록체인 영역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었던 신한투자증권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3년 5월 퇴사하고 7월 중순에 바로 고로랩스 Gorolabs를 창업했습니다. 그리고 고로랩스는 블록체인과 전혀 관련이 없는 스타트업입니다.
1) 왜 스타트업인가요?
첫 직장이던 스타트업과 정반대의 문화를 가진 신한투자증권에서 근무하면서 확실히 나는 스타트업 문화가 맞구나를 여러번 느꼈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마다 여의도의 다양한 분들을 만났는데,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긴 합니다만, 만난 분들 중 9할 이상이 만나면 불평불만과 신세한탄을 토로하셨습니다. 과연 현재 행복하다면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전부 불평 및 신세한탄일까? 행복하지 않기에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저에게 큰 영향을 준 팀장님의 말씀이 있는데, '월급을 얼마를 받던 그거는 내 공부 내 일을 할 시간에 남의 일을 해주는 대신 받는 기회비용일 뿐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하루라도 젊을 때 내 사업을 일구는데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2) 블록체인은 왜 안해요?
전역한 후 커리어 대부분을 블록체인 관련 일을 해왔는데요. 고로랩스의 첫 프로덕트는 전혀 관련 없는 일본 내 한국어 교육 플랫폼입니다. 블록체인 업계에 있으면서 조금씩 회의감을 느껴왔는데, 과연 이게 사람들의 실제 삶에 부가가치를 얼마나 창출하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블록체인의 이념 자체에 매혹됐던 저지만, 그 이념이 사람의 손에서 비즈니스가 되는 순간 본질을 잃고 남는건 단기간에 큰 돈을 벌고 싶단 욕구뿐. 그것이 고상한 동기와 그럴듯한 거창한 말들로 포장되어 시장에 선보여지는 모습들을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적지 않은 팀들이 돈을 버는 이유가 '사람들의 삶에 실제 부가가치를 창출해서가 아니라, 그저 코인 가격이 올라서'였죠. 물론 그렇지 않은 팀들도 많이 있으며, 블록체인이 기존 금융 시스템을 개선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는 지금도 믿고 응원합니다. 다만 지금은 아직 이른 시기인 것 같고 직접 블록체인 씬에서 사업을 진행할 여지는 없다고 느꼈죠.
테마와 섹터를 하나로 단정 짓지 않고, 사람들의 삶에 보다 직관적으로 실제 부가가치를 창출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오래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직접 만든 '내 것'이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보이고 관심을 받을 때 즐겁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오랜 기간 애니/게임 리뷰, 블록체인 관련 아티클 등 다양한 글을 써오기도 했고, 트위터, 텔레방,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나름 큰 팔로워도 모으고 돈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고 반응하는 것이 즐거웠죠.
'사람들의 삶에 부가가치를 창출해주는 것을 직접 만들어 시장에 선보이고 싶다'가 진정 원하는 것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첫 아이디어를 정하고 고로랩스를 창업하였습니다.
고로랩스의 창업 스토리
첫 아이템은 '일본인이 한국인 대학생 튜터와 온라인 회화 레슨을 가질 수 있는 플랫폼', 고로모찌 스쿨 ゴロモチスクール이었습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데 무려 제가 입대하기 직전 '19년 여름부터입니다. 입대 전 마지막 여행으로 친구와 도쿄에 왔고 한인타운인 신오쿠보라는 지역에 들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저희는(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팩트임) 거의 한국 아이돌급 취급을 받았습니다(돌 던지지 말아주세요). 상상 이상으로 일본의 젊은 세대(특히 여성)는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에 열광했습니다. 일본에서 한류가 이렇게 열풍이라는 정보를 전혀 모르던 저로썬 깜짝 놀랄 일이었죠.
그 후 몇년간 일본 문화를 팔로업하며 날이 갈수록 한류 열풍이 커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창업을 선택할 때 즈음 본격적으로 시장 리서치를 해보았고, 일본의 한국어 교육 시장에서 기회가 있다고 느껴 서서히 고로모찌 스쿨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죠. 다양한 데이터와 수치들이 일본에서 한국어 교육 시장이 얼마나 크고 핫한지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 내 한국어 교육 시장에서 타겟할 Niche를 발견했죠.
일본 내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방법에는 크게 세 축이 있습니다.
1) 학원 및 개인과외를 통해 한국어 수업 듣기
2) 책, 유튜브, 드라마 등으로 독학
3) 한국인 친구 사귀기
1과 2는 많은 매체가 있지만 직접 한국인 친구를 사귀어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서는 인스타그램과 헬로우톡 두개의 채널만이 존재했습니다. 한국인 친구를 따로 만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이들 아니면 온라인으로 모르는 한국인에게 접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점들이 많이 있었죠. 가장 큰 것은 신뢰의 문제였습니다. 특히 '언어교환 SNS앱'으로 시작한 헬로우톡은 '헬(Hell)'로우톡으로 전락하고 있었죠. 다수의 한국인 유저(특히 남성)들은 그저 일본 여자 어떻게 한번 꼬셔보고 싶다는 이상한 의도를 가지고 앱을 사용했고 어느 순간 언어교환 앱의 본질을 잃고 앱이 틴더(Tinder)화되었습니다. 이성적인 목적으로 접근했다가 흔히 말하는 '각'이 안 보이면 연락이 두절되고, 익명성 때문에 한국인 멘토의 퀄리티 컨트롤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헬로우톡의 이러한 점에 대한 문제 인식이 늘어나고 있었고요.
이때 저에게 영감을 준 프로덕트가 있는데 바로 링글(Ringle)입니다. 미국의 우수한 아이비리그 출신 튜터를 직접 엄선하여 한국에서 수준 높은 영어 회화를 익히고 싶은 유저들과 연결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저 또한 링글의 애용자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디에이션 기간에 링글의 이승훈 대표님께서 아예 모르는 사이였던 저를 진심 어리게 도와주시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때 저의 사고는 이랬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인과 직접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은 수요가 많지만 마땅한 매체가 없다. 신뢰할 수 있는 우수한 한국인 대학생 튜터와 온라인으로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많이 사용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낸 프로덕트의 가장 첫 컨셉은 서연고 대학생을 튜터로 섭외해 일본인 유저에게 연결해주는, 그야말로 링글의 일본판이었죠. (그래서 프로덕트 이름이 안 지어진 시기의 가명도 Jingle이었습니다). 물론 이후에 시장 특성과 타겟 고객이 다르다는 점 등을 고려해 컨셉과 내용을 많이 바꿨습니다.
어느날 이 아이디어를 고등학교 친구이자 현재 코파운더인 노우준 님에게 말했습니다. 노우준 님은 올해 여름에 막 전역을 한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노우준 님은 제가 아는 사람들 중 몇 안되는 천재입니다. 빈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요. 저 또한 어디 하나에 꽂히면 미친 몰두를 통해 어떻게든 배워내고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지만, 노우준 님은 저보다 훨씬 위입니다. 문제는 고등학교 때 꽂힌 어디 하나가 게임 롤이었다는 점이지만, 맨날 야자시간에 어딘가로 사라져 하루종일 롤을 하고 돌아오지만 경시대회 1등하고 시험 만점 받고 그러는 소위 재수 없지만 미친 친구였죠.
사실 처음부터 노우준 님과 동업을 생각하고 얘기한 건 아니였고, 그 땐 그냥 술 마시다가 친구로써 '나 퇴사하고 이런거 해볼까 한다' 라고 말한거였는데 노우준 님이 생각 외로 엄청난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러고 개발 아키텍쳐 및 기술 스택 등의 이런이런 구상을 술자리 즉석에서 짜서 저에게 설명해줬죠. 저에게는 마케팅과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의 경험이 있었고 노우준 님은 뛰어난 개발 실력이 있었죠. 같이 팀업하면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콤비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 더 술을 마시며 의견을 맞춰가다가 같이 '사이드 프로젝트 따위 필요없다. 무조건 전념으로 본업으로써 해보자'라고 결심해 7월 중순에 같이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고로모찌 스쿨 프로덕트 빌딩 일지
고로랩스는 2명으로 시작했으며 지금도 2명으로 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노우준 님이 모든 개발을 맡고, 제가 소위 말하는 '개발 빼고 다'를 맡는 조합이죠. 또한 저는 올해 하반기에 도쿄의 죠치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오는 것이 확정되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있는 7,8월에는 같이 출퇴근하면서 빠르게 프로덕트를 빌딩하고, 9월부터는 서로 리모트로 일하며 노우준 님은 한국에서 개발을, 저는 일본에서 마케팅을 맡기로 했죠.
저희의 첫 목표는 레슨 신청부터 온라인 레슨을 들어볼 수 있는 고로모찌 스쿨 웹사이트를 만들어 일단 바로 시장에 던져보는 것이었죠. 신경 쓸 데이터는 오로지 수익화, 즉 유저가 돈을 내고 한국인 대학생 튜터와의 온라인 회화 레슨을 듣는가 였습니다.
창업 이후 간단한 타임라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7월
- 팀세팅 후 중순부터 스파크 라운지(공유 라운지)에 출퇴근하며 프로덕트 기획과 개발 시작
8월
- 풀타임으로 스프링라운지(스프링캠프 감사합니다)에 출퇴근하며 매일 프로덕트 개발
9월
- 저의 일본 이주 후 각종 일처리 + 적응 및 코파운더의 개강에 의해 서로 살짝 바빠짐
- 첫 리모트 전환이기도 하고 서로 살짝 늘어져 한달의 절반만 풀타임으로 일했음
10월
- Framer로 랜딩페이지를 만들고 베타테스트에 참여할 인원 모집. 베타테스트의 조건은 1회 1500엔인 레슨을 최소 5회 이상 결제하여 듣는 것이었음. 이때 50명 가량이 모집됨.
- 최소 7500엔(약 67000원)을 내고 서비스를 사용할 의사를 표현한 사람이 50명이었기에 계속 진행할만하다 판단함
- 베타테스트에 참가할 한국인 튜터들을 모집. 튜터는 레슨 1회(=30분) 당 7000원의 레슨비를 지급받게 됨. 약 50명이 지원했고 모두 직접 모의레슨을 진행해 그 중 20명을 선발.
11월
- 13일에 베타테스트를 오픈하였으며 신청자들에게 결제를 요청. 하지만 극히 일부만이 결제를 진행.
- 전략을 수정하여 오픈 베타테스트로 변경. 신청자 뿐 아니라 누구든지 레슨을 들을 수 있으며, 최소 5회 조건을 없애고 1회라도 수강해볼 수 있도록 변경 + 첫 레슨 결제는 50% 할인으로 변경
- 그래도 결제율이 저조하여 최후의 전략으로 '회원가입만 해도 레슨 1회 무료'으로 변경
- 레슨을 그냥 무료로 들을 수 있음에도 신청조차 하지 않는 유저들이 대다수였음.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고자 라인으로 유저들에게 피드백을 받고자 했지만 애초에 답변율이 매우 저조했음.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끊임 없이 전략 수정을 거듭함.
12월
- 최종 성적표: 홈페이지 접속 유저(6000명) -> 회원가입 유저(50명) -> 레슨 진행 횟수/결제 횟수(매우 저조)
- 애초에 ‘한국인 대학생과의 1:1 온라인 회화 레슨’이 수요가 없는 아이디어일 가능성이 커보였음. 계속 시간을 투입해 전략을 수정해도 유료 결제로 얼마나 전환될 지 의문이었음.
- 결국 더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붙잡고 있을 아이디어로 판단. 다른 아이디어로 피봇하기로 결정.
첫 프로덕트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실패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애초에 충분한 수요가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큽니다. 일본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일본 와서 살면서 제가 예상한 거 이상으로 많다는 걸 알게 됐죠. 하지만 그것이 전부 '돈을 내고 한국인 대학생 튜터와 대화'하려는 수요가 아닙니다. 또한 일본인들과 하나둘씩 가까워지면 느낀 바로는, 대부분 언어를 배울 때 독학하는 것을 선호하며 잘 못하는 언어로 모르는 이와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럽고 창피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대다수의 유저들이 한국 아이돌이나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돈을 내고 온라인 회화를 하는 것까지는 '굳이'의 영역이었죠.
이유가 어찌됐든 어떠한 전략을 써봐도 유저들이 애초에 레슨을 듣는 빈도가 매우 낮았으며 첫 프로덕트는 '안 될 놈'으로 판단 되어 접었습니다. 역시 창업 후 처음 맛보는 실패의 맛이 기분 좋을 리는 없죠. 고로모찌 스쿨을 접어야겠다고 결정한 날에 정말 우울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 헤드폰 하나를 낀채 노래를 들으며 도쿄 시내로 나가 하루종일 걸었습니다. 어디어디를 걸었는지도 기억이 안납니다. 평소에 관심 없던 래퍼 테이크원의 '녹색이념' 앨범을 갑자기 들어보고 싶어 틀었죠. 그러다가 '제자리'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도쿄 신주쿠 길 한가운데에서 펑펑 울면서 걸어다녔습니다. 왜 울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골든가이 스트리트의 어느 한적한 바에서 위스키를 뜨겁게 실패의 쓴 맛과 함께 삼켜넘겼고, 다음날부터 바로 다음 아이디어를 찾아나섰습니다. 인생이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복기록: 종착점에서 지나온 철도를 되돌아보며
이제 본론입니다. 이번에 나에게 무엇이 부족했고 다음엔 뭘 다르게 할 것인가?
1. 실패할거라면 차라리 빠르게 실패해라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만약 어떤 아이템이 애초에 '안 될 놈'이라면, 오히려 하루 빨리 안 될 놈이라는 걸 깨달아서 시간과 비용을 더 투입하기 전에 접는 것이 좋죠. 저희도 가설 검증을 하고 좋은 아이템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필요한 과정을 거친 것이죠. 하지만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적은 돈으로 했었어야 합니다. 계산해보니 다음에는 시간과 비용 정확히 딱 절반으로 가설 검증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과 비용이 적정치보다 2배가 든 이유는 첫번째로 저희의 미숙함입니다. 아무래도 저와 노우준 님 모두 창업이 처음이다 보니 개발과 기획, 행정 처리 등에 미숙해 불필요한 시간을 많이 소요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경험을 거듭하며 반드시 나아질 부분이기에 큰 문제가 아닙니다. 두번째,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는데 바로 저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저희의 첫 MVP는 웹사이트였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MVP 치고 완성된 웹사이트가 너무 린하지 않다 라고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 선택은 틀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신생 및 실체 없는 서비스에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일본에서 연고도 없던 저희 팀이 더 미니멈한 버전의 서비스로 결제를 요청했으면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더 빠르게 유저들의 반응을 수집하고 가설을 검증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8-9월에 먼저 웹사이트 만드는 것에 바로 착수를 하고 10월이 되어서야 랜딩페이지 배포 후 베타테스트 신청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본격적인 유저 인터뷰 및 수요 조사 없이 바로 프로덕트부터 만든 경우인데요. 이런 타임라인으로 간 것에는, 제가 한국에 있고 서로 널널할 때에 프로덕트 개발에 집중하고 9월부터 제가 일본에 나가 연고를 쌓은 후에 유저에게 리치아웃해 영업하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웹사이트가 완성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기에 출시가 한달 남은 시점부터 베타테스트 신청을 받자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랜딩페이지 배포 후 베타테스트 신청을 더 빨리 했었을 수 있습니다. '베타테스트 신청 받았다가 아무도 신청 안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때문에 계속 가설 검증이 미루어졌죠. 많은 창업가들이 처음에 하는 실수를 저도 범했습니다. 계속 가설 검증을 미루고 일단 자기 아이디어에 꽂혀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책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에서 이미 읽은 내용이고 계속 명심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 멍청하게 딱 그런 실수를 범했습니다.
계속 무의식 중에 '조금 더 기능 붙이고 검증 받으면 반응이 좋을거야', '일본에 가서 일본 시장 더 이해해보고 가설검증하면 잘될거야', '아직 우린 준비가 되지 않았어'라는 식으로 계속 가설 검증을 미룰 변명을 찾았죠. 그리고 두려움의 큰 원인 중에는 노우준 님도 있었습니다. '나 혼자하는 거라면 별 상관 없지만, 내가 끌여들여서 노우준 님은 이렇게 시간 쏟아서 일했는데 만약 아무도 신청 안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미안함과 부담감이 컸죠. 애초에 고로모찌 스쿨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팀인데 이 아이디어가 안되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하지만 너무나 잘못된 멍청한 생각입니다. 안 될 아이템이라면 계속 붙잡으면서 시간과 비용을 쏟는게 가장 잘못된 것입니다. 애초에 처음부터 너무나 잘 되는 성공적인 아이디어를 찾아 잘 되는 경우가 극히 소수입니다. 다음부터는 한번 아이디어를 정했다면 검증에 필요한 최소한이 갖춰줬다면 바로 검증해볼 것입니다. 그리고 노우준 님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은 결국 한순간에 해결되더라고요. 계속 타지에서 혼자 스트레스를 받다가 어느날 그냥 솔직하게 물어봤습니다. 이번 아이디어 잘 안되면 떠날거냐고. 하지만 노우준 님이 '난 고로모찌 스쿨 때문에 너와 함께 하는게 아니라 고로랩스로써 너와 함께 하는 거다'라고 대답해주었고 바로 모든 부담감을 내려놓았죠. 아이템보다 팀이 우선이니 팀으로써 이것저것 다 해보자 라고 생각하면서요. 다음엔 팀원과 관련된 고민이 생기면 그냥 바로 팀원이랑 공유하고 이야기할 겁니다.
2. 유일한 유효한 데이터 = 결제
맨 처음에 7500엔을 내고 베타테스트에 참여할 유저를 모집할 때 약 50명이 신청하였습니다. 심지어 신청하는 과정은 단순하지도 않았고 약 10개 정도 질문의 구글폼을 제출해야했습니다. 모든 신청자들이 정성들여 작성해 제출해주셨죠. 물론 50명 전부가 실제 결제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고무적인 수치라고 판단했고 실제 베타테스트 오픈까지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베타 오픈 후에 실제를 결제해주신 분은 단 1분이셨습니다. 비상이었죠.
저는 창업을 진행하기 전부터 반드시 처음부터 '수익화'가 붙어있는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무런 수익이 나지 않지만 유저수를 먼저 확보하고, 그 유저수를 바탕으로 IR해서 투자금을 유치하고, 그 투자금을 계속 태우며 버티지만 계속 수익은 나지 않는 그런 사업을 저는 하기 싫었습니다.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제 취향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뚜렷한 수익 모델이 있는 사업을 선호하고, 사업을 판단할 때 유효한 유저의 액션은 결제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레슨이 발생할 때마다 레슨비의 일부를 수수료로 챙겨가는 간단한 수익 모델을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베타테스트도 유료로 진행했죠. 하지만 여기서 제가 실수한 부분은, 막상 실제 상황에 처하자 그저 구글폼을 제출했을 뿐인데 그것을 유효한 액션으로 여겼다는 점입니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구글폼 신청 50명 자체가 매우 부족했던 수치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부터는 가설 검증을 할 때 최종 결제만을 유효한 데이터로 보고 행동할 것입니다. 채널 추가, 이메일 주소 제출, 구글폼 제출 등등. 그런 수치만 보고 낙관적으로 생각해 프로덕트 다 만들었는데 아무도 결제 안한다면? 이미 그런 일을 한번 겪었습니다.
다만 어느 수준까지의 MVP 및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고객에게 보여준 후 결제를 요청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법론과 사례를 공부할 것입니다. 의견이 있으시다면 꼭 알려주세요.
3. 처음에 확실한 충성고객들을 먼저 확보해두고 움직일 것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건너오기 전에 일본에 연고가 전혀 없다는 점 및 일본어의 한계 때문에 저는 유저를 모으고 소통하는 일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했습니다. 모두 충분한 래포(rapport)를 쌓지 못했으며 소통을 하지 못했죠.
나중에 베타테스트 오픈 후에 아무도 결제를 하지 않고 또 '가입만 해도 레슨 1회 무료' 전략을 내세워도 레슨을 신청하지 않을 때 피드백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채널을 추가해주신 유저 약 80명에게 연락을 보냈고 심지어 제 개인 계정으로도 모두에게 여러번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답장이 온 것은 단 5명이었습니다. 유저의 피드백을 받고 싶은데 애초에 피드백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죠. 차가운 벽을 느꼈죠.
다음부터는 초반에 저희 팀 및 프로덕트에 깊은 관심을 갖고 앞으로도 주실 확실한 소수의 고객을 확보하고 깊은 관계를 쌓을 것입니다. 진짜 제 개인적인 친구라는 생각으로 가깝게 소통하면서요. 그렇게 그들을 먼저 확실하게 인터뷰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고객을 점차 확장할 것입니다. 만약 지금 기억을 가지고 일본에 처음 온 9월로 돌아간다면, 제가 바로 할 일 중 하나는 바로 각종 한국어 교류 이벤트들을 나가 한국어 교류에 관심 있는 일본인들을 만나 친해지는 것이겠죠.
또한 다음에 홍보 채널로써 커뮤니티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면 프로덕트가 나오기 전부터 미리 커뮤니티를 꾸준히 키워놓을 것입니다. 저희도 고로모찌 스쿨 인스타 계정이 있었는데요.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카드뉴스를 일본어로 올렸죠. 이를 통해 한국에 관심 많은 일본인 팔로워를 먼저 확보해두고 그 다음에 서서히 인스타로 저희 서비스를 홍보할 예정이었죠. 인스타 계정은 그래도 꽤 잘 되었습니다. 별 다른 홍보 없이 순수 컨텐츠만으로 운영 한달만에 팔로워가 100명을 넘겼습니다. 다만 문제는 제가 인스타 계정 운영에 너무 소홀했다는 것입니다. 9월에 개설된 인스타그램인데 카드뉴스 컨텐츠가 13개밖에 없습니다. 프로덕트 기획 쪽 일을 하느라 매일 꾸준히 카드뉴스 컨텐츠를 제작할 여유가 없었죠. 라고 하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제가 그냥 게을렀습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매일 카드뉴스를 제작해 지금쯤 100번째 게시물을 올렸겠죠. 실제로 고로모찌 스쿨 유저의 거의 대부분이 인스타를 통해 유입되었습니다. 프로덕트가 만들어진 후에 커뮤니티 키우기 시작하겠다고 생각하면 너무 늦습니다.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동안에 미리 커뮤니티를 꾸준히 키워놓아야겠습니다.
4. 절대 독립적인 디펜던시를 두지 마라
저희는 한국 법인으로써 일본 유저에게 엔화 결제를 받아야한다는 특수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소위 근본이 아직 없는 스타트업으로써 특히 신뢰성에 민감한 일본 유저들에게 개인 계좌이체나 송금 등으로 결제를 받을 수는 없었고요. 그래서 MVP 단계이지만 공식 엔화 결제 모듈을 붙이는 것이 필수적이라 느껴 국내 기업에게 엔화 결제 모듈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소통, 그리고 결제 모듈을 붙이기 위한 심사 과정에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할게요.
공지한 베타테스트 오픈 일정은 계속 다가왔고 결국 계속해서 더 심사를 기다릴 수는 없었으며, 결국 결제 모듈을 사용해보지도 못한 채 급하게 페이팔을 통한 1:1 인보이스 발행이라는 불편한 방식으로 결제를 베타테스트 신청자들에게 요청했습니다. '구글폼 제출 -> 인보이스 발행 -> 신용카드 결제'라는 매우 불편한 방식이었죠. 이것이 저의 너무나도 큰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유저라고 생각해봅시다. 베타테스트를 신청하고 계속 기다리다가 드디어 오픈 소식과 결제 요청이 날라왔는데, 말 같지도 않은 방식으로 돈을 내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때 이미 많은 유저들이 이탈을 하고 추후 오는 연락을 확인하지 않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다음부터는 일정이 늦춰지더라도 반드시 완벽하고 결함이 없는 상태로 오픈을 할 것입니다. 완벽이라고 해서 모든 기능을 다 갖췄다는게 아니라, 최소한 필요한 기능은 모두 완벽하게 갖췄다는 의미로요. 그리고 내부에서 조절할 수 없고 온전히 외부 요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제 2의 옵션을 미리 준비하던가 해당 리스크를 흡수할 수 있는 버퍼를 둘 것입니다.
5. 먼저 내가 타겟하는 시장 열성 소속원이 되자
저희의 타겟은 일본 시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이라는 해외 시장의 문화를 먼저 확실히 이해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일본에 건너오기 전에 제가 너무 자만했습니다. 나름 애니 및 만화를 포함해 일본 문화 전문가였고 일본어를 완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올해 6월이었지만 이미 몇년간 수없이 많은 애니를 보며 일본어를 체화하여 듣고 말할 수 있었죠. 그래서 '그냥 일본에 건너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무언가에 부딪히며 배워가는 성격이라서, 일본어 문법 책 한권만 끝낸 채로 일본에 무작정 건너와 바로 풀 일본어로 부동산 계약을 하고 각종 행정 처리를 하며 생존형?으로 일본어를 익혔습니다. 따로 공부도 많이 했고요. 일단 일본에 와서 부딪히니깐 실제로 일본어가 빠르게 늘더군요. 하지만 비즈니스를 하고 고객을 설득하는 마케팅을 하기엔 한참 부족했습니다.
마케팅에 쓴 문구들이 모두 말은 되었지만 세세한 뉘앙스와 느낌이 어색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유저들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지른 실수들도 있습니다. 일단 아까 제가 피드백을 받기 위해 개인 계정으로 연락을 했다고 했죠? 이것이 알고 보니 일본인 입장에서는 매우 예민하고 당혹스러운 일이더군요. 아무리 대표로부터 피드백을 물어보는 연락이라고 하더라도요. 또한 한국어를 공부하는 라인의 오픈채팅방에서 서비스를 추천했는데 이것이 매우 수상쩍은 행위처럼 비쳐졌고요. 이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엮여서 '왠지 서비스가 안전해보이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몇명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인들이 매우 폐쇄적이고 신용을 중시하며 스타트업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하지만 이에 저희가 맞추어야 하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시장을 타겟하려면 나부터가 그 시장의 열성 소속원이 되어야합니다. 그 시장의 일원으로써 문화와 가치관 및 사고방식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가장 기초입니다. 일본을 타겟하는 만큼 일단 당연히 일본어 언어가 기초 중의 기초였지만 많이 부족했죠. 그래서 정말 빡쎄게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그 자체가 되겠다는 마인드로 일본 문화와 시장을 온몸으로 배워야겠고요.
6. 확실한 와우포인트가 없다면 걍 하지를 마라
사실 처음에 친구 사귀기의 축에 있지만 문제점이 많은 헬로우톡과, 일본에서 가장 큰 한국어 학원이며 온라인 1:1 회화 레슨도 제공하는 KVillage 두 군데를 경쟁사로 뽑고 프로덕트를 빌딩해왔습니다. KVillage보다는 재밌고 더 '리얼'한 한국인과 대화할 수 있고, 헬로우톡보다는 체계적이고 신뢰성 있는 중간 포지션을 잡았죠. 이를테면 친구와 튜터의 중간 즈음입니다.
이 중간이라는 단어는 큰 함정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친구입니다. 문제가 없을 때는 다 자기 아이디어에 대해 낙관적으로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중간이라는 것은 양쪽의 장점 모두를 취하기 때문에 양쪽 유저를 모두 끌어올 수 있는 매력이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정신 나간 소리였죠. 확실한 포지셔닝 및 내 프로덕트를 반드시 써야하는 확실한 와우 포인트가 없다면 그건 애초에 만들면 안되는 아이디어입니다.
또 프로덕트를 빌딩하다보니 Amazing Talker 등과 같은 기타 서비스들이 저희와 아주 유사한 기능을 제공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프로덕트가 꽤나 개발된 상황이었고, '우리는 그래도 일본 유저들에게 더 친화적이니깐', '우린 리얼한 한국인 대학생들이 튜터니깐', 심지어는 '고로모찌(저희 캐릭터)가 귀여우니깐'등과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며 일단 걍 출시해보자 생각했습니다. 그때라도 피봇을 하던가 대폭적인 수정을 했어야 했는데 그냥 애써 합리화하며 밀고 나갔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느날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건 바로 일본어 공부를 하는 제가 돈 내고 온라인으로 회화 레슨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죠. 이유는 '굳이?'였습니다. 돈을 내기가 싫기도 했고요. 생각해보니 저부터도 돈을 내고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를 유저들은 돈을 내고 사용하기를 바라는 미친놈이었다는 걸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확실한 와우포인트가 있고 저부터 쓸모가 있다고 설득되는 아이템만을 만들겠습니다.
7. 모든 과정은 선택의 연속이다. 가장 효율성 높은 선택을 하자.
베타테스트 모집 기간에 고로모찌 스쿨의 시작점이었던 한인타운 신오쿠보에 일주일 간 매일 나가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몇시간 씩 온갖 길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스미마셍,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라고 외치며 고개를 숙이며 전단지를 뿌렸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 대표라고 하면 럭셔리한 오피스에서 멋있게 앉아있고 샴페인을 따며 품위유지 하고 그런 멋진 이미지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스타트업 대표야말로 가장 아래에 있는 잡무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오쿠보에서 직접 전단지를 뿌리며 수없이 많이 거절 당하고 심지어 길거리에 내가 나누어준 전단지를 바로 앞에서 바닥에 버리는 것을 목격하는 수모도 겪었으며, 심지어 어느 호빠 직원들이랑 왜 자기 영역에서 광고하냐며 싸움이 붙기도 했죠. 그냥 일본어 못하는 척 그냥 알바인 척 '바이토 바이토'하면서 빠져나갔습니다.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분명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마케팅 방법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단지를 보고 저희 서비스를 신청한 사람은 1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점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차이나타운을 놀러가는 사람 중에 중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였습니다.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신오쿠보에 모여드는 것은 팩트지만, 그들 중 극소수만이 다 한국어의 열성 학습자라는 의미이죠. 시간과 비용은 한정되어있습니다. 신오쿠보에 가서 무모하게 전단지를 돌리는 것은 효율성이 높은 마케팅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넓은 신오쿠보에 나라는 사람 1명만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건네고, 그 중에 거절하지 않고 받은 사람이 한국어를 열성적으로 배우는 사람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겟하거나 그랬어야 했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있으므로 다음부터는 각 선택지들의 효율성을 먼저 따져보고 가장 효율성이 높은 선택지들을 위주로 선택할 것입니다.
앞으로 고로랩스는? 긴 글을 마무리하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로랩스는 말씀드렸다시피 두번째 아이템을 정했으며 다시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번째 실패를 통해 오히려 더 fired up 되고 팀의 사이도 돈독해진 것 같습니다. 다음 아이템은 무조건 성공하겠다는 보장은 솔직히 없습니다만, 지난번보단 무조건 더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다음 아이템은 현재 스텔스 모드에 있기에 공개하기엔 어렵지만, 일본 시장을 다시 한번 타겟하고자 합니다. 저희 회사 정체성이 일본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의 시간을 써서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것을 만들자 Make our time into people’s utility'라는 고로랩스의 비전에 따라, 어떤 사람들의 삶에 비어있는 부분을 포착하고 무언갈 만들어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바로 실험해볼 뿐입니다. 다음 아이템도 일본에서 기회를 포착했을 뿐입니다. 이번 아이템에 있어선 오히려 외국인으로써 일본인과 다른 시야로 바라볼 수 있는 점이 강점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종류의 피드백, 커피챗 요청, 문의사항에 항상 열려있습니다! 특히 일본으로 진출해있으시거나 진출을 희망하고, 일본 20대 고객층에게의 마케팅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저희가 제안드리고 싶은 협업 포인트가 있습니다. 또한, 아이디어만으로는 투자 받고 싶지 않으며 최소한 프로덕트를 직접 시장에 던져 심판대에 올라본 후에 투자를 받고 싶긴 하지만 모든 투자사 분들과의 미팅에도 열려있습니다. 편하게 연락 주십시오 :)
추가로 이 개인 홈페이지의 향후 방향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원래는 블록체인 업계에 있었을 때 리서치 글들을 개인 블로그에 써왔었는데, 앞으로는 조금 힘을 빼고 그때그때 기록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을 때마다 편하게 글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가장 큰 주제는 1) 창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이모저모 2) 비즈니스맨의 관점에서 본 일본의 이모저모 등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모든 글은 이 개인 홈페이지, EO플래닛, 디스콰이엇, 링크드인에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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